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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서정보]빌보드 1위 美 가수 “내 노래 정치에 이용하지 마라”

‘나는 온종일 일하며 영혼을 팔아요, 형편없는 돈을 벌려고 잔업을 하죠.’ 일용직 노동자 출신의 백인 컨트리가수 올리버 앤서니가 부른 ‘리치먼드 북쪽의 부자들(Rich Men North Of Richmond)’은 이렇게 시작한다. 노동 계급의 애환을 담은 이 노래 영상은 유튜브 공개 2주 만에 조회수 4400만 건이 넘었다. 최신 빌보드 차트에선 테일러 스위프트 등 슈퍼스타를 제치고 핫100 1위에 올랐다.

▷이 노래의 인기가 급상승한 건 미국 공화당 지지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가사 덕분이다. ‘네 돈은 끝없이 세금으로 부과돼’, ‘뚱뚱한 사람들이 착취하는 복지’ 등은 복지를 핑계 삼아 세금을 너무 많이 떼어가는 민주당 비판이라는 것이다. 공화당 정치인들은 ‘잊힌 미국인들의 찬가’ 등의 칭송을 쏟아냈다. 노래가 거론한 이슈들은 모두 공화당이 더 잘할 수 있다는 자화자찬까지 나왔다. 최근 공화당의 대선 경선 토론회는 이 노래 영상을 먼저 본 뒤 진행될 정도였다.

▷공화당을 위한 노래라는 해석에다 영웅화 움직임까지 보이자 앤서니가 직접 반박하는 영상을 26일 올렸다. 그는 “내 노래가 정치적 무기화(weaponized)되는 것이 싫다”고 했다. 그는 “이 노래는 조 바이든과 관련 없고, 오히려 기업들에 종속된 시스템 전체를 지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파는 자신을 끌어들이려고 하고, 좌파는 자신을 불신하게 만들려는 움직임을 그만두라고 경고했다. 각 진영이 듣고 싶은 대로만 듣고 해석하는 것에 대해 쓴소리를 던진 것이다.

▷정치가 엔터테인먼트계의 인기를 이용하려고 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번처럼 노래를 정치적 정체성을 알리는 도구로 쓰거나 인기 연예인들의 지지 선언을 통해 이미지 개선을 꾀한다. 하지만 이미지만 빼먹으려는 얄팍한 계산이 오히려 역풍을 맞는 경우도 많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닐 영의 노래 ‘로킹 인 더 프리월드’를 유세송으로 썼다가 동의가 없었다며 고소당했다.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는 2018년 미 테네시주 주지사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공개 지지했으나 투표 결과 상대 후보에게 예상보다 더 많은 표 차로 패배했다.

▷미국 매체 더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연예인들의 정치적 지지 선언이 내 투표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응답이 65%나 됐다. 더욱이 4명 중 1명은 연예인 지지 후보를 더 꺼리게 됐다고 한다. 구체적 어젠다를 제대로 모르는 연예인들의 지지는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19대, 20대 대선 모두 연예인 지지 숫자가 줄었다. 지지자도 ‘그 나물에 그 밥’ 수준이어서 주목도도 많이 떨어졌다. 일시적 이미지 조작이나 아전인수격 해석으로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어려워졌다. 정치가 승부를 봐야 할 지점은 결국 스스로의 역량과 매력이다.

횡설수설

“절대 굴복 안 해”… 트럼프 ‘분노의 머그샷’ 연출[횡설수설/이정은]

서정보 논설위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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