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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공원 CCTV 의무화 유명무실… 광화문광장 2.5배 면적에 1대뿐

6년째 설치 기준-처벌 규정 없어

등산로 살인범 “CCTV 없는 것 알아”

관악구 인근 공원 6곳에 63대 불과

“범죄예방 효과 기대 어려워” 지적

“새벽에 혼자 등산길을 오르다 무서워서 내려왔어요. 동행을 구하고 다시 올라가고 있어요.”

20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독산자연공원 등산로에서 만난 박경심 씨(65)는 “5년 전부터 비 오는 날 빼고는 거의 매일 공원에 나왔는데 무서워서 혼자 등산을 포기한 건 처음”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박 씨가 즐겨 찾는 이 공원은 17일 등산로 폭행 살인 사건이 벌어진 관악산생태공원에서 불과 500m 떨어진 곳이다. 박 씨는 “공원 곳곳에 폐쇄회로(CC)TV라도 많이 설치돼 있으면 안심이 될 텐데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 광화문광장 2.5배 넓이, CCTV는 1대뿐

도시공원 내 범죄나 안전사고 가능성이 있는 지역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한 도시공원법이 6년 전 시행됐음에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명확한 설치 기준 등이 없다 보니 법 조항이 사실상 사문화된 것이다.

21일 동아일보가 관악 생활안전지도 등을 통해 사건 현장 인근 공원의 CCTV 설치 현황을 확인한 결과 17일 ‘등산로 폭행 살인 사건’이 발생한 관악산생태공원의 경우 크기가 축구장(7140㎡) 10개보다 넓은 7만6521㎡(약 2만3000평)였지만 설치된 CCTV는 7대에 불과했다. 사건의 피의자 최모 씨(30)도 “CCTV가 없는 걸 알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범행 장소에서 약 500m 떨어진 독산자연공원은 면적이 서울 광화문광장(4만300㎡)의 2.5배인 10만2145㎡에 달했지만 공원 내에 설치된 CCTV는 주차장에 설치된 1대뿐이었다. 본보 기자가 실제로 한 시간가량 이 공원을 돌아다녔지만 길 인근에 CCTV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 공원은 주 등산로를 중심으로 여러 샛길이 나 있다. 등산로를 조금만 벗어나면 성인 어깨 높이까지 풀이 무성하게 자라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두 공원을 포함해 서울 관악구 인근 도시공원 6곳 약 91만 ㎡(약 27만5000평) 면적에 설치된 CCTV는 총 63대에 불과했다. 1대당 축구장(7140㎡) 2개가 넘는 약 1만4400㎡를 담당하는 것으로 사실상 범죄 예방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 “CCTV 설치 규정 구체화해 실효성 높여야”

도시공원법은 ‘지방자치단체장이 범죄나 안전사고 발생 우려가 있는 공원 내 주요 지점에 CCTV와 비상벨 등을 설치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시행령에 “주민과 경찰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고만 돼 있고 설치 간격이나 장소, 규격, 기준 등 구체적인 지침이 없다 보니 유명무실하게 운영돼 온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범행 다음 날에야 사건 발생 장소를 찾아 “CCTV를 최대한 많이 설치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며 인공지능(AI) CCTV 설치 방침을 밝혔다. 윤희근 경찰청장도 21일 “지자체와 협조해 인적이 드문 장소에 우선적으로 CCTV를 설치하는 등 보완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설치 규정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강석진 경상대 건축학과 교수는 “2017년 시행된 도시공원법에는 공원 어느 곳에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CCTV를 설치해야 하는지 실행 계획이나 지침이 없다”며 “의무화했지만 어길 시 처벌 규정도 없다. 이제라도 규정을 구체화해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최미송 기자 cm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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