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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간토학살 희생 조선인 296명 이름 더 찾았다

민간硏, 기존 205명 포함 501명 확인

희생자 위령비에 새겨진 이름들 1957년 지역민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이 
위령비의 뒷면 상단에는 ‘이재호’ ‘이상호’ ‘김삼선’ 등 대지진 당시 자경단에 학살된 조선인 희생자 17명의 이름이
 한자로 새겨져 있다. 아래쪽에는 이들의 피살 과정과 위령비를 세운 경위 등이 일본어로 기록돼 있다. 1923제노사이드연구소 제공희생자 위령비에 새겨진 이름들 1957년 지역민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이
위령비의 뒷면 상단에는 ‘이재호’ ‘이상호’ ‘김삼선’ 등 대지진 당시 자경단에 학살된 조선인 희생자 17명의 이름이
한자로 새겨져 있다. 아래쪽에는 이들의 피살 과정과 위령비를 세운 경위 등이 일본어로 기록돼 있다. 1923제노사이드연구소 제공

‘조수규, 정황봉, 이만수, 이재호, 김성동….’ 일본 군마(群馬)현 후지오카시 조도지(成道寺)에 있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위령비’ 뒷면에 한문으로 새겨진 17명의 이름 중 일부다. 이들은 1923년 9월 당시 위협을 느끼고 경찰서로 피신했다가 자경단에 살해당했다. 위령비는 1957년 지역민들이 조선인 희생자를 기리며 자발적으로 세웠다. 일본 각지에 흩어진 위령비와 각종 문헌 등 사료 조사를 통해 간토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 희생자 296명의 명단이 새로 파악됐다. 국내 사학자 10여 명이 소속된 ‘1923제노사이드연구소’(연구소)는 최근 작성한 보고서 ‘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명부에 관한 실태조사’를 동아일보에 공개하고 지난해 조사를 통해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29일 밝혔다. 실태조사는 시민단체 ‘1923한일재일시민연대’가 함께 했다.

그간 국내에서 만들어진 간토대지진 피살자 명부는 1952년 12월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내무부가 290명(중복 등 제외 시 205명)의 이름 및 본적, 피살 경위 등을 파악한 ‘일본 진재시 피살자 명부’가 유일했다. 기존 명부와 새로운 연구 결과를 종합해도 현재까지 이름이 파악된 조선인 희생자 수는 501명에 불과하다. 간토대지진 당시 조사가 제한된 상황에서 피살 장소와 숫자만 기록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조사(6661명)를 기준으로 해도 나머지 6160명의 희생자는 이름조차 모르는 셈이다.

충남 천안시 연구소에서 26일 만난 성주현 연구소 부소장(63)은 “정부 주도로 일본 관공서 소장 희생자 명부를 추가로 파악해 희생자 이름을 역사에 뚜렷이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토학살 희생 6661명중 501명 파악… 中은 800명중 750명 확인

中, 학살 직후 희생자 명부 파악… 韓, 100년 되도록 명부조차 못갖춰
1923제노사이드硏-한일시민연대 “역사 기억하려면 이름 더 찾아야
사료 대부분 日에… 학계 연대 필요”

1923년 9월 1일 간토대지진 발생 직후 최소 6000여 명의 조선인이 일본의 군경과 자경단에 의해 살해됐지만 일본뿐 아니라 우리 정부 측에서도 제대로 된 실태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피해 조사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희생자 명부조차 미비한 실정이다.

● 희생자 명부조차 없는 한국

희생자 위령비에 새겨진 이름들 일본 군마현 후지오카시에 있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 위령비’. 1923제노사이드연구소 제공희생자 위령비에 새겨진 이름들 일본 군마현 후지오카시에 있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 위령비’. 1923제노사이드연구소 제공

1950년대 초 내무부가 조사해 마련한 ‘일본 진재시 피살자 명부’는 주일 한국대사관 창고에 묻혀 존재마저 잊혀졌다. 그러다 학살 90년이 된 2013년 7월 주일 한국대사관을 신청사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피해 당시엔 한반도가 일제에 강점된 상황이었고, 광복 뒤에도 6·25전쟁 등으로 혼란을 겪었다고는 해도 피해 규모에 비해 진상을 밝히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한국과 달리 대지진 당시 800여 명의 자국민이 학살당한 중국은 당시 북양정부가 학살 직후 희생자 750여 명의 명부를 파악했다. 1923제노사이드연구소의 성주현 부소장은 “한국은 이제 희생자 이름을 추적해야 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 시민단체, 희생자 이름 추적

연구소와 1923한일재일시민연대(시민연대)는 관공서 문헌과 위령비 등 사료 속에 흩어진 희생자의 이름을 찾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동아일보 등 관련 신문기사 △목격자 최승만 씨의 회고록 ‘극웅필경’ △일본 도쿄 조선대가 1963년 발행한 ‘관동대진재 조선인학살의 진상과 실태’ △도쿄 현지 희생자 추도비 4건 △재일조선인 사학자 강덕상이 조선인 학살 희생자 관련 문헌을 종합해 1963년 발간한 ‘현대사자료’ 등 조선인 희생자 이름이 담긴 사료 16건을 조사해 피살자들의 이름 317명을 찾아냈다. 이들 가운데 중복된 이들을 제외하면 모두 296명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드러나지 않은 희생자들의 이름이 기록된 사료들이 더 있다. 일례로 일본 사법성(현 법무성)이 1924년 조선인 희생자 230명을 발표한 기록이 있는데, 당시 사법성이 희생자 수를 종합하며 명부를 작성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현재까진 발표된 희생자 수의 바탕이 된 명부 자료는 공개된 적이 없다. 성 부소장은 “명부 자료는 앞으로 연구소가 추적해야 할 핵심 사료 가운데 하나”라고 꼽았다. 또 일본 요코하마엔 간토대지진 때 학살당한 조선인 유골 수십 기를 봉안한 납골당이 있다. 여기에도 희생자 이름이 기록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소와 시민연대는 앞으로도 계속 일본의 학자, 시민들과 힘을 모아 조선인 희생자 명부를 찾아낼 계획이다.

● “한일 양국 연대 필요”

김종수 시민연대 공동대표(60)는 26일 충남 천안시 연구소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이 밝혀질 때 ‘조선인 학살’이라는 한 덩어리의 사건이 아니라 개개인에게 닥친 비극이 드러난다”고 강조했다.

2007년 조직된 시민연대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한일재일시민연대’에 참여한 단체 가운데 하나다. 김 대표는 2020년 설립된 연구소의 운영위원장도 맡고 있다. 김 대표는 “간토대학살 희생자와 목격자가 거의 대부분 세상을 떠난 지금 기억의 몫은 미래세대에게 남겨졌다”며 “비극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한 사람의 이름이라도 더 찾아야 하는 까닭”이라고 말했다.

시민연대는 희생자 추도 및 출간 사업은 물론 한일 학계와 시민단체의 연대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달 25∼27일엔 ‘간토학살 100주기 문화제’를 열었다. 문화제에 참석한 니시무라 나오토 일본 도시샤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원은 “기억도 중요하지만 기록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며 “간토학살을 직접 경험하고 체험한 이들이 살아 있지 않은 지금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아카이브를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대표는 “간토학살과 관련한 사료는 거의 대부분이 일본에 있기 때문에 일본 학계의 협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한일 양국 시민과 학계의 평화적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천안=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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